▲ 김 석 천(전 교사)

 최근 '미투(Me Too) 운동'으로 사회가 어수선하다. 
법조계, 문화·예술계, 체육계, 학계, 정치계, 종교계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성범죄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투 운동’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공개하는 일이기에 당사자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치부(恥部)를 드러내기를 서슴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악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의 소리 때문이리라. 미투(Me Too) 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용기에 먼저 존경을 표한다.
나는 최근 성 스캔들의 도마 위에 오른 배우들을 좋아했다. 영화 스크린이나 안방극장에서 본 그들의 카리스마(charisma)가 인상적이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들의 모습은 단지 연기(演技)였던 것 같다.

 며칠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K씨가 성(性) 피해 사실을 밝힘으로써 우리 사회가 벗은 몸이 된 것 같다. 비교적 도덕적인 인물로 비쳤고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받고 있던 A지사마저 그런 짓을 했다니 성한 곳이 없는 듯하다.
피해자인 K씨의 인터뷰 내용 중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 때문에 저항을 하기 어려웠다”는 말은 가슴을 울렸다.
위계(位階)가 분명한 조직사회의 권력 관계 구조에서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미덕으로 생각되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 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거짓 순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K씨의 말처럼 강자는 약자의 처지에서는 권력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무겁다. 
“저는 일할 때 거절하거나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어렵다고 하는 것은 저에게 최대한 방어였고 거절이었다”는 K씨의 말은 피해자의 고통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처럼,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사회가 건강해질 텐데. 우리 같은 서민들이 아옹다옹 눈을 흘기고 싸움질을 할 때 등을 다독여 풀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되레 국민을 분노하게 하는 일에 솔선수범(?) 하고 있는 현실에 독기가 오른다.
기왕에 권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할 말은 해야겠다. 비단 성 가해자의 경우뿐만 아니라 밥숟갈만 빼고 나면 권력 다툼이나 하는 나리들 역시 국민들에겐 권력 가해자다. 
쌈질에도 당위성이 필요해서인지 틈만 나면 ‘국민의 뜻’이라고, 자기들의 욕심을 무단히(無斷-) 국민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꼬락서니가 솔직히 볼썽사납다. 그것은 그들만의 파렴치한 도그마(dogma)다.
사람은 부끄러워할 때는 마땅히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한데 권력을 가진 이들의 가슴은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는지 부끄러움 같은 것은 아예 모르는 모양이다. 
국민 앞에서 막말을 하는 것은 보통이고, 거짓 책동과 불안 심리를 조장하고, 자칫하면 좌파라고 몰아붙여 국민들의 마음을 들쑤시고…. 이쯤 되면 그들도 권력 가해자다. 또,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한 파렴치한들 역시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가해자다.
세상이 참 아프다. 거칠고 패역(悖逆)한 시대다. 마하트마 간디가 증오했던 ‘양심 없는 쾌락’에 묻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인간의 존엄함을 가벼이 여기고 갑질을 하는 일들이 얼마나 빈번한지.   
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선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정치 권력이건, 인기 권력이건, 직장 권력이건, 돈의 권력이건 간에 권력이 바르게 사용되지 않는다면 악(惡)일 뿐이다. 
권력으로 인해 악이 창출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우는 법이다. 
촛불혁명이 절대 권력의 부패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미투 운동은 성 문제를 넘어서 우린 사회 변혁 운동의 불쏘시개일 것이며 악(惡)을 들춰내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악(惡)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의는 척결(剔抉)되고 개혁은 계속되며 사회구조는 변화되어야 한다. 
권력이 악이 되는 그런 시간은 끝났다(Time i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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