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자(편집국장)

 그에게 있어 돈은 종교였다. 사회적 위치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변했다면 권력이 클수록 더 큰돈을, 더 쉽게 쥘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돈이란 정의나 공공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웃집 개 짓는 소리보다 못한 이야기로 치부했던 그의 말로는 검찰 포토라인이다. 
‘부자 됩시다. CEO 출신이 정치를’ 한때 우리사회에 불었던 구호이다.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대한민국을 맡길 수 있다는 국민적 정서, 결과적으로 괴물을 키워버렸다.

 중국 청나라의 부흥을 이끌었던 견륭황제에게 화신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임금의 총애를 바탕으로 삶의 전부를 자신의 재산축적에 헌신했다. 자손 대대로 다 쓰지 못할 재산축적에 올인한 그의 삶을, 돈은 종교이자 살아가는 이유였다고 해석해야만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은 철학의 실종이었다. 권력은 사유화되고 인간의 존엄성보단 이념의 대립이 사회를 지배했다. 사회를 철저히 이분화시켜 통치하는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 국가, 독재권력이 추구하는 통치수단이다. 
경제만을 외쳤던 미국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오직 경제이익만을 위해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사고, 경제 속에 포함돼야 할 보편적 복지와 공익성, 보편적 인간의 삶의 질은 실종됐다. 
4대강 사업, 전 국토를 관통한 자전거 도로, 자원외교 등 모두가 경제를 살린다는 외침의 결과물이다.    

 6·13선거가 다가왔다. 여전히 우리의 사고엔 해남 경제를 살릴 인물을 찾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경제를 포괄한다. 정치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제 문화 복지정책 등을 추구한다. 또한 인간 상호 간의 갈등을 조율하며 한 사회를 더 나은 공동체적인 사회로 이끈다. 후보 스스로 갈등 조정의 힘이 없다면 그 사회는 철저히 분열된다는 것을 우린 몸소 체험했다.
또 정치란 철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어떠한 철학적 사고를 가졌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방향, 각 시군의 방향이 달라진다. 
한국과 미국을 바라보며 우린 한 지도자의 철학이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 버린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해남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관통돼 왔다. 잘사는 해남을 만들겠다는 중심엔 토목공사가 자리했다. 관광도 농업정책도 시설과 도로 중심이었다. 지금도 해남을 살릴 프로젝트 하면 토목공사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사고는 군민을 철저히 보조금 주는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여전히 해남선거에 거는 기대가 적다. 난맥상이다. 
유권자는 후보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철학적 아우라를 본다. 군정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아닌 그들의 말 한마디에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엿본다. 그런 의미에서 후보 난맥상이라는 것이다. 
또 해남은 선거의 난맥상을 한탄하면서도 철저히 지역선거를 한다. 제7대 군의회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하면서도 내 지역사람을 뽑겠다는 움직임은 여전하다.

 인물난에 지역주의 선거, 여기에 더해지는 정당선거, 해남의 정치하향화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할 전망이다. 이러한 후보난맥상이라면 오만으로 일을 저지르지 않을 후보, 뭔가 배우고 노력하려는 후보가 더 나을 것이다. 미래전망을 말해야 할 선거이지만 우린 여전히 교과서적인 선거, 교과서적인 후보를 말해야 할 상황에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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