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교사)

 사람은 저마다 회억의 창고를 하나씩 지니고 있습니다. 기억이 머릿속의 메마른 기록이라면 회억은 물기 촉촉한 삶의 흔적입니다. 회억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익어 만들어진 기억입니다.
어불도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회억의 땅입니다. 

완도군 신지면에 있는 해조류 스파랜드에 들렀습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해수찜질 가족탕을 빌렸습니다. 
남녘 바람에 밀려온 파도는 모래톱을 만들고 지우기를 쉬지 않고 물비늘은 보석처럼 바다를 수놓고 있었습니다.
스파에서 내려다보니 어불도처럼 보이는 긴 섬이 앞에 보였습니다. 누에처럼 긴 모양새가 영락없는 어불도입니다. 
“여보, 저기 보이는 섬이 어불도 아닌가?”
“뭐시 어불도예요? 여기가 완도인디. 섬만 보면 어불도라고 합띠다이”
“그런가?”
“소안도에서도 살았는디 소안도 생각은 별로 안 나는데 어불도 생각만 자주 나네.” 
내 머릿속엔 아직도 어불도가 진하게 자리 잡고 있고 어불도 아이들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섬을 볼 때마다 어불도의 추억이 말을 걸어옵니다. 어떤 시간은 그냥 흘러가버리는데 어불도의 시간은 제자리를 맴돌며 활동사진처럼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2002년에 발을 딛었던 어불도는 교육의 꽃을 피웠던 땅입니다. 
그 곳에서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는 슬로건을 걸었습니다. 그건 교육자의 자존감이었기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날이 밝으면 시작한 학교는 밤 10시가 넘은 후에야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손 글씨로 정부에, 때론 기업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 열정 때문이었던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지 여러 번 매스컴을 타기도 했었고 인간극장 작가가 5부작 촬영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되어 육지로 나오던 날, 주민들에게 발령이 났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아무도 모르게 여객선을 탔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건만 지금도 내 마음 속엔 어불도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들은 모두 어불도처럼 보입니다. 안개에 가려 희무끄레하게 보이는 섬엔 분교장의 태극기가 펄럭이고 경철이, 허준이, 선호 등 열네 명 아이들의 뛰어 노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바다 일을 하다 말고 육지까지 데려다 주었던 박회장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군복무중인 허준이, 어불도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복양식을 하고 있는 경철이와 선호, 혼자 놀기를 좋아했던 민석이 그리고 지금은 여엿한 숙녀가 되었을 효비, 효정, 유미 그리고 이름이 가물가물한 아이들이 그때 그대로 가슴에 담겨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인생은 정성을 쏟은 곳에 마음이 머물고 회억은 시간이 흘러도 먹물 자국처럼 또렷한가 봅니다.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인해 아름답다죠?
섬을 떠나온 지 16년이 흘렀습니다. 
어불도 사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교육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을 바쳤던, 짝사랑했던 섬, 어불도를 이생이 다할 날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 사랑 어불도!
이 땅 어딘가에 야학을 했던 아이들이 숨 쉬고 있고 그 곳 주민들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저만치 또 어불도가 보입니다.
(어불도 학교 이야기를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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