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3·1만세로 1회 졸업생 고작 10명…100주년 맞은 우수영초

기사승인 2019.10.07  16:04:19

공유
default_news_ad1

 

1회 졸업생 3·1만세시위로 대부분 옥살이
명량의 정신·강강술래도 이곳 출신들 이어

   
▲ 폐교가 된 옛 우수영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는 유관순 동상은 횃불을 든 채 여전히 울돌목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우수영초등학교 1회 졸업생은 10명에 불과하다. 2회 졸업생 수는 21명, 3회 33명에 비해 적은 숫자다. 이유는 3·1만세시위에 가담한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재판을 받고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다.
우수영초는 1918년 7월 명량의숙으로 개설돼 3·1만세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12월 우수영 사립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터는 우수영수군 객사와 관아 터에 자리했다. 또 13척의 기적을 일으킨 명량해협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명량대첩비도 인근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수영초등학교 학생들은 개교와 동시에 애국심이 남달랐다. 
1918년 7월 명량의숙으로 개설된 우수영초에선 3·1만세시위가 일어난 다음 해인 1920년 4월21일(음력 3월3일) 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공교롭게도 운동회 날이 3·1만세시위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운동회를 마친 박기술, 박용문, 전유봉, 박동수, 최이규, 박규성, 주봉옥, 이준섭 등 9명의 학생들은 저녁에 박동수의 집에 모였다. 이때 학생들의 나이는 17~18세. 이 자리에서 윤인섭이 3·1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한 만세시위를 제안했다. 이에 친구들은 흔쾌히 찬성하고 ‘독립만세 지원자 성명표’를 만들어 각기 연명(連名), 청년다운 결의를 다졌다. 
다음날 22일, 학생들은 대형태극기 3개를 들고 우수영 거리로 향했다. 그러나 이날 시위는 우수영보통학교 교사들에 의해 제지당하고 학생들은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 우수영 주민들이 나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했고 요구가 무산되자 23일 우수영주민 5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시위로 확대됐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동외리에 있던 경찰주재소는 해남읍 경찰부대에 지원을 요청, 만세대열을 제지했다. 

만세시위로 9명 옥살이

이날 만세시위로 우수영보통학교 9여 명의 학생들이 체포돼 목포 감옥에서 4개월에서 1년간의 옥살이를 했다. 
현재 우수영초 졸업대장에는 체포된 9명 중 박기술과 박용문 2명만 등재돼 있다. 이에 변남주 교수는 옥살이를 했던 나머지는 퇴학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이유로 우수영초 1회 졸업생이 10명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수영 만세시위는 해남읍 외에 면단위에선 유일했다. 
1942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은 명량대첩비를 강제로 뜯어 서울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묻어버렸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우수영 유지들은 대첩비를 찾아 우수영에 다시 세우는데 이때 활약했던 인물이 우수영초 1회 졸업생이자 우수영 3·1만세시위를 주도했던 박용문이다. 

명량대첩비 찾는 데도 앞장

또 우수영초 졸업생인 故홍형덕 선생은 평생 명량대첩 유적보존과 이순신 장군 호국정신 선양에 활약했던 인물이다. 명량대첩유적보존회 회장을 맡아 이순신 장군 어록집과 전라우수영 성지에 관한 책을 발간했다. 이어 이충무공 탄신일과 명량대첩 승전일 기념대제 봉행,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청소년 백일장 행사, 명량대첩 유적지 현창사업 등을 이끌었다.
우수영초는 우수영 강강술래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한 진원지이기도 하다. 옛 우수영초등학교는 명절만 되면 온 동네 처녀들이 운동장에 모여 강강술래를 했고 우수영 아이들은 이러한 어른들을 보며 자랐다. 

강강술래 전수에도 큰 몫

우수영초 출신인 김금자씨도 마찬가지였다. 김금자씨는 강강술래가 국가무형문화재 8호로 지정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그 같은 인연으로 강강술래 기능보유자 1호가 됐다. 
김금자씨는 서울로 이주한 후 우수영초 졸업생들 중심으로 강강술래팀을 꾸려 강강술래를 전국으로 대중화시키는데 기여했고, 올해 열린 명량대첩축제에도 우수영초 출신들로 구성된 강강술래팀을 출전시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이자 숱한 저서를 통해 무소유의 철학을 알려왔던 법정 스님도 우수영초 27회 졸업생이다.   

법정스님도 우수영초 출신

한편 우수영초는 1920년 8월에 우수영 공립보통학교로 인가가 났고 1930년에는 수업연한이 4년제에서 6년제로 개편됐다. 
이어 1965년 임하분교가 설치되고, 1970년 녹도 무교도서교가 설치된다. 이후 1992년 임하분교 통합에 이어 중화초등학교가 분교로 격하돼 우수영초에 편입된다. 2014년 문내초등학교와 문내동초, 중화분교, 우수영초가 통폐합한 후 지금의 난대리로 이설했다.
우수영초는 2019년 제99회 졸업생 19명을 포함해 9,2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우수영초와 총동창회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오는 19~20일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김성훈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성훈 시민기자 5340234@hanmail.net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