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 안동 김길현 할아버지
하루 3~4시간 길 위에서

           해남읍 안동마을 김길현 할아버지는 매일 같은 길을 하루 2~4시간씩 걸으며 자연을 만난다.  
           해남읍 안동마을 김길현 할아버지는 매일 같은 길을 하루 2~4시간씩 걸으며 자연을 만난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묵묵히 마을 길을 걷는다. 하루 적게는 2시간, 많게는 4시간, 할아버지의 걷는 모습은 이젠 자연스럽게 마을 풍경이 됐다. 
해남읍 안동마을 김길현(92) 할아버지, 마을 길을 걸은 지 20년째이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곁엔 할머니가 있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하며 길을 걷던 모습도 안동리의 풍경이었다. 
“그냥 걷는 거다. 마을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길에 핀 꽃도 보고.”
할아버지에게 있어 길은 거창한 사색의 길이기보다 그저 삶이다. 길이 있기에 걷고 그 길에서 만나는 꽃과 사람이 있어 더 좋다. 항상 같은 길인데도 길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마다 각기 다른 색으로 반긴다. 그래서 20년째 마을 길을 걷지만 내일의 길이 궁금하다.  
할아버지의 마을 길 걷기는 아침부터 시작된다. 오전 7시, 손수 차린 아침 식사를 마치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먼저 집에서 2분 거리인 마을회관 옆 분리수거장을 점검하고 마을회관을 들러 잠시 머문다. 돌아가는 동네 이야기며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전혀 새로 울 것 없는 마을 길을 걷는다. 어제 핀 꽃이 여전히 피어있는지 꽃과도 마주하고 누구네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한참동안 들여다 본다. 가끔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역정을 내기도 하고. 
그 길 위에서 소소한 행복이라 하면 가장 좋아하는 꽃인 무궁화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끝자락에 있는 무궁화가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과다.   
 할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는 중절모다. 환절기 찬바람에 감기가 걸리면 안 되기에 가을과 겨울에는 꼭 중절모를 착용한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멀리서도 중절모를 보며 오늘도 할아버지가 길을 걷고 있음을 안다. 
수십년 째 매일 하는 산책이기에 90세를 훌쩍 넘겼어도 하루 3~4시간 걷는 것은 일도 아니다. 힘이 들면 마을 정자와 벤치에 잠깐 쉬고 또 걷는다. 가끔은 집으로 찾아오는 요양보호사의 차를 빌려 삼산면에서 하차한 후 집으로 걸어오곤 한다. 2~3시간 산책 코스라 참 좋다.  
할아버지는 술·담배도, 흔히 하는 화투에도 취미가 없다. 그냥 길을 걸으며 자연과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최고의 낙이다. 
산책의 즐거움에 텔레비전도 멀리한다. 저녁 식사 후 뉴스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쯤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의 운동능력과 인지능력은 70대 못지 않다.
매일 같은 날의 반복이지만 마을길을 걷다 보면 간혹 아쉬움이 밀려온다. 지난해 먼저 보낸 아내에 대한 후회에서다.

 할아버지는 “배고픈 시절 못 해준 것이 많아 지금도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마을 곳곳에 같이 산책하던 길도, 같이 햇볕을 쬐던 흔들의자도 이젠 혼자 걷고 혼자 앉는다. 가끔 가만히 마을 풍경을 바라보면 집사람과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둘이 걸었던 길, 이젠 혼자 걷는 길이 됐지만 길은 여전히 할아버지의 낙이자 사랑이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